백선엽 대전현충원 안장 찬반 논란

말세 이야기|2020. 7. 1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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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H'군입니다.


6.25 전쟁영웅인 故 백선엽 장군이 7월 10일 오후 11시 4분에 향년 100세의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백선엽 장군은 1920년 평안 강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문에 들어온뒤, 6.25전쟁 당시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내신 분입니다.


6.25 전쟁영웅 vs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장본인

故 백선엽 장군이 별세한 후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에 대해 찬반 논란이 일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전쟁영웅을 현충원에 안장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이를 반대하는 이들은 어떤이유에서 반대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故 백선엽 장군은 일제식민지 시절, 일본이 조선독립군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서 세운 간도특설대에 소속되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장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 사진출처 - 연합뉴스 >



이러한 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에 대한 반대의견에 대해 정의당 김종철 대변인은 '일부 공이 있다는 이유(6.25 전쟁영웅)로 온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일제의 주구가 되어 독립군을 토벌한 인사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면 과연 앞서가신 독립운동가들을 어떤 낯으로 볼 수 있나?' 라고 비판하였습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백 장군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군의 초석을 다졌던 진정한 국군의 아버지'라며 '백 장군을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인가?'라고 반발하였고, '그와 함께 싸워 이 나라를 지켰던 국군 용사들은 대부분 동작동에 잠들어 있다'며 '6.25 전쟁 중 전사한 12만 호국 영령들은 지하에서 '우리의 사령관 백선엽 대장과 동작동에서 함께 하겠다'고 외칠것' 이라고도 했습니다.

故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식민지에서 태어난 청년이 만주군에 가서 일했던 짧은 기간을 '친일'로 몰아 백 장군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좌파들의 준동'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故 백선엽 장군의 별세에 대해 공식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민주당 관계자는 ' 故 백선엽 장군이 4성 장군으로서 한국 6.25전쟁때 공을 세운것은 맞지만 친일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면서 故 백선엽 장군의 별세에 대해 당이 입장을 내지 않는것이 맞다고 본다'고 하였습니다.




故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군 최초 대장 자리에 올랐던 분입니다.

백장군은 6.25 전쟁당시 다부동 전투 때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 만약 내가 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며 배수의 진을 쳐 후퇴를 막았던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인천상륙작전 이후 평양 점령의 선봉에도 섰으며, 1952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고, 1953년 4성 장군, 1959년 합참의장, 1960년 예편했습니다. 

퇴역 후에는 주중화민국(대만)대사, 주프랑스대사 등을 비롯 교통부 장관, 한국종합화학공업 시장 등 회교관, 기업인 등으로 지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경력임에도 일제 간도특설대에 복무를 하였던 적이 있었기에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의 명단에 故 백선엽 장군의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 故 백선엽 장군의 동생 故 백인엽 장군

故 백선엽 장군보다 먼저 별세한 故 백인엽 장군에 대한 내용이 함께 떠오르고 있는데 이유는 3살 아래인 동생 故 백인엽 장군도 6.25전쟁 당시 활약을 하였지만 2013년 별세하였을 때 국립현충원이 아닌 가족묘에 안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동생 故 백인엽 장군은 왜?

故 백인엽 장군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아마 이것 때문은 아닌가 하는 설이 돌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동생 故 백인엽 장군도 활약을 하였지만 당시 아군 병사들을 죽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자신의 차량을 추월한 이등병을 상관보다 빨리 달렸다는 이유로, 시동을 꺼트렸다는 이유 등으로 총으로 쏴 죽였다는 겁니다.

뭐...6.25 당시에는 아군 특히 부하가 상관에게 불만이 생겨 하극상으로 죽은 병사들의 수가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상관이 부하를 저런 이유로 쏴죽였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것 같습니다.


故 백선엽 장군과 동생 故 백인엽 장군 둘다 6.25 한국전쟁 당시 큰 활약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자 죄를 지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쪽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야 하는지 가족묘에 안장되어야 하는지는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수 있을듯 합니다.


이러한 논란은 답을 정하기가 참으로 애매합니다.

찬성하는 분들의 의견도 맞고, 반대하는 분들의 의견도 맞으니 말입니다.

사람마다 의견을 다르겠지만 저는 가족묘에 안장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6.25 전쟁때 활약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군을 탄압하였던 것도 인정되기에 서로 상쇄하여 가족묘에 안장하는 것이 앞서 가신 독립군들과 전쟁 순국선열분들께도 적절한듯 싶기 때문입니다.


故 백선엽 장군께서는 어디에 안장되실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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